세피아를 보내며...
96년 초에 결혼을 하고 큰 아이를 가졌다.
대학원을 다니는 학생이었지만 졸업후 취직에 대한 걱정이 없는 때라 당연히 취직할 거라 믿고 차를 사기로 했다.
그 전에 몇년을 타던 100만원짜리 중고 프레스토가 있었는데 어찌나 속을 썩였었는지 차값보다 수리비가 훨씬 많이 들었을 뿐더러 포항시내 가장 번화하다는 오거리에서 퍼져서 여동생이 뒤에서 밀어서 길가로 차를 뺀 적도 있었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뒷꽁무니에서 하얀 연기가 연막소독하는 차처럼 나오고, 항상 트렁크에 엔진오일을 실고 다니면서 보충하여야 했다.
그렇지만 그차로 공부하러 오고 가고, 출퇴근도 하고, 집사람과 데이트도 했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로는 차를 사고 처음 집사람과 데이트 하는 날 송도바닷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막상 집에 가려고 시동을 키니 시동이 걸리지 않아 주변의 택시기사들의 도움으로 차를 밀어서 시동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프레스토를 대학원입학하고서는 결국 폐차를 했다. 돈도 없었고 차가 너무 고장이 많이 나서 더 이상 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폐차장에 넘기고 돌아 올때의 찹찹했던 기억이 세롭다.
차를 사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세피아가 뉴세피아란 이름으로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그때 그 디자인에 집사람이나 나나 홀딱 반하고 말았다. 다른 고민없이 세피아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항구동에 있던 기아대리점에 가서 바로 계약하고 2주가량 뒤에 차를 받았다. 차를 받을 때 아직 뱃속에 있던 진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타지 않겠나고 말했었는데 벌써 그 진현이가 고등학교를 바라보게 되었다.
한때 집있고 세피아 정도급의 자동차를 소유한다면 더 이상 부러울게 없는 삶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는 존재하지도 않던 그랜져가 국민 페밀리카급이 되었으니 생활이 많이 나아진건가?
집사람이 결혼할 때 가지고 온 400만원을 결재하고 나머지는 할부로 갚아 가는 조건으로 구입했었는데 취직후 할부가 끝날 때까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길게만 느껴지던지...
회사에 입사하고 차를 몰고 회사에 갔을 때 지금은 퇴사한 현장의 간부 한 분이 신입사원이 왜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다니냐고 묻기도 했었다.
그랬던 차를 이제 보내려고 한다.
더 이상 타기에는 너무 오래되어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점점 어이없는 사고들이 많이 생겨서 사이드 에어백이 달린 차를 타야 할 것 같았고,
타이밍밸트라던지 허브베어링등 수리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출퇴근할 때 매연이 걸러지지 않아 불편했고,
수동이어서 운전하고 나면 어떤 때는 허리가 아파서 불편함이 있고,
그래서 그만 타고 차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아래는 차를 구입하고 타는 동안 기록했던 차계부를 정리해 보았다.
구입년월일: 1996년 11월 27일
구입금액: 9,050,000원 (현금입금 4,050,000원 5,000,000원 18개월 무이자 할부)
등록세: 493,620원
총 수리금액: 3,209,300원
주유금액:
1) 총주유액: 16,082,000원
2) 총주유량: 11,895 리터
3) 총주행거리: about 157,772 km
3) 평균연비: 13.26 km/l
update(7월 2일): 세피아 차량을 매각하였다. 당초 폐차하려 했으나 중고상에서 더 쳐 준다는 말에 중고상을 불렀다. 기대보다 훨씬 못 미치는 57만원에 넘겼다. 수출하지는 않고 운전연습용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 잘 다니고, 행여나 길거리에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한다
폐차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별 다른 감흥은 없었다.
update(7월 4일): 시흥의 폐차장에서 폐차되었다고 말소 증명서가 날아옴. 실제 폐차되었는지는 확인키 어렵다.